볼펜은 돼도, 물티슈는 안 돼?…직장인 횡령의 선, 어디까지?

2022년 1월 오스템임플란트에서 20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한 것을 비롯해 ‘억’소리 나는 고액의 각종 횡령 범죄가 쉴 새 없이 터지고 있다. 사기업은 물론 금융회사와 관공서에 이르기까지 사고가 나지 않는 영역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개인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기업의 허술한 감시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직접적인 자금 횡령이 아니라도 회사의 비품 등을 집으로 가져가거나 개인적인 목적으로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아예 ‘소확횡’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인다. 소확횡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을 줄인 말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을 변형한 것이다. 회사 물건을 소소하게 사적으로 소비하면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의미다.  
이런 소확횡도 원칙적으로는 절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는 괜찮다, 이건 선넘었다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소확횡은 어디까지일까?
최근 기업에서 직원의 횡령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직접적인 자금 횡령 외에도 회사의 각종 비품 등을 집으로 가져가는 등의 ‘소확횡’을 보는 직장인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볼펜, 커피 믹스는 ‘OK’, 물티슈는 “선 넘었다”
지난 6월 기업정보 플랫폼 잡플래닛은 이용자 469명에게 소확횡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업무 시간 외 다른 일을 하는 ‘시간 횡령’에 대한 직장인들의 의견은 사례에 따라 온도 차가 있었다. 먼저 업무 시간에 여행 정보를 찾아보는 것에 대해서는 ‘잠깐이니까 괜찮다’(57%)는 답변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아무리 업무 시간이라고 해도 잠깐은 눈감아줄 수 있지 않겠냐는 것. 
그럼 그 잠깐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말하는 걸까. 30분 정도 우체국이나 은행 등 개인 용무로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 없다’는 답변이 53%로 ‘안 된다’보다 많았다. 급한 개인 용무가 있다면  30분 내외의 업무 시간은 개인적으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업무 시간에 자주(1시간에 한 번)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했다. ‘괜찮다’와 ‘안 된다’가 각각 절반인 50%를 차지했다.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용무로 잠깐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 정보를 검색하는 등의 ‘시간 횡령’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회사 비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건 해당 물품이 사무용품인 경우에는 챙겨가도 상관 없다는 답변이 많았다. 예컨대 회사 볼펜은 어차피 쓰라고 둔 거니 집으로 가져가도 괜찮고(60%), 회사에서 A4용지로 개인 자료를 출력하는 것도 괜찮다(78%)는 게 다수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사무용품이 아닌 생활용품에 가까운 비품이라면 어떨까. 커피 믹스나 과자 등의 간식류에 대해서는 챙겨갈 수도 있다는 답변이 53%, 회사에서 일하면서 먹으라고 둔 건데 그걸 집에 왜 챙겨가느냐는 답변이 47%였다. 
물티슈의 경우에는 ‘집에 가져가서는 안 된다’(72%)는 답변이 훨씬 많았다. 간식이야 직원들 먹으라고 둔 거라지만, 물티슈 같은 생활용품은 양심상 불편하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전기를 개인적인 목적으로 마음껏 쓰는 직장인들에 대해서는 다들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무실에서 보조배터리를 3개씩 충전해가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괜찮다’는 답변이 71%에 달했다. 전기 횡령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소확횡 만연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범죄’
시간이냐, 사무용품이냐에 따라 다소 의견이 갈리기는 해도 직장인들 사이에 관행처럼 ‘소확횡’이 만연해 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보상 심리로 회사 비품을 슬쩍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인지 직장인들은 큰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SNS에 훔쳐온 회사 비품을 자랑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회사가 이를 알면서도 문제 삼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소확횡도 엄밀히 따지면 범죄다. 
타인의 재물을 허락 없이 가져가는 것은 절도죄에 해당한다. 즉, 회사 자산인 회사 비품을 직원이 마음대로 가져가면 절도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문서 출력 몇 장 한 건데 뭐 어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훔친 재물의 양과 상관없이 절도죄에 해당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더욱이 회사 비품을 관리?보관하는 직원이 그랬다면 횡령죄에 해당한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물건을 반환하지 않은 경우 성립한다.
tvN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가 탕비실에서 커피믹스를 훔치는 장면(왼쪽)과 소셜미디어에 ‘소확횡’을 인증한 직장인들. /tvN, 인스타그램 캡처
절도죄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의 벌금, 업무상횡령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횡령액에 따라 가중처벌도 가능)을 받는다. 
비품 한두 개 가져갔다고 회사가 형사고소까지 하겠냐마는 원칙은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상습적이라면 최소 징계사유가 되고도 남는다. 소확횡, 소소해도 탈이 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소소하지 않은 대형 횡령 사건 잇달아
이미 선을 넘어버린 횡령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오스템임플란트 재무 담당 직원이 2000억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사건부터 계양전기, 아모레퍼시픽 등에서도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계양전기는 246억원, 아모레퍼시픽은 35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금융기관 중에선 새마을금고에서 40억원대,  우리은행에서 664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심지어 강동구청 등 관공서에서도 115억원이 넘는 횡령이 벌어져 논란이 됐다. 

전문가들은 민간·공공영역을 망라하고 횡령 범죄가 줄줄이 터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조직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점을 꼽았다. 오스템임플란트와 계양전기, 금융권에서 적발된 횡령범들은 회삿돈을 관리하는 재무 담당자였는데 이들의 권한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미비했다는 것이다.

횡령 사건 피의자들 대부분이 빼돌린 회삿돈으로 주식 등에 투자했다가 날렸다는 점도 주목된다. 오스템임플란트 직원과 강동구청 공무원은 각각 횡령액 중 1000억원 이상과 77억원을 주식 투자로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은행 직원 역시 횡령액 가운데 300억원 이상을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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