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림, 작곡까지 ‘뚝딱’…“AI, 넌 못하는 게 뭐니?”

인간 고유 영역인 예술 분야로 확장하는 AI
국내 최초 AI가 쓴 시집 출간, 총 53편 수록
“시를 쓰는 이유를 묻지 말아주십시오. 그냥 쓰는 것입니다. 쓸 수밖에 없기에 씁니다. 무엇을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시를 쓰는 이유’라는 시의 일부다. 시를 쓰는 이유를 간결하게 풀어낸 이 시는 사람이 쓴 게 아니다. 1만편이 넘는 시를 읽으며 작법을 익힌 초거대 인공지능(AI) 모델이 단 몇 초 만에 ‘창작’한 시다. 이름은 ‘시아(SIA)’. 시아는 카카오의 인공지능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이 개발한 시 쓰는 AI 모델로, 오는 8월 8일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단 몇 초 만에 시 완성…AI의 진화
지난 8월 1일 카카오브레인은 시아의 첫 번째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8월 8일 출간한다고 밝혔다. 시아는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개발된 시를 쓰는 AI 모델이다. 
카카오브레인은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와 함께 이 모델을 개발했다. 시아는 1만3000여편의 시를 읽으며 작법을 익혔다. 주제어와 명령어를 입력하면 시아가 입력된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고 곧바로 시를 짓는다. 시 한 편을 완성하기데 1초 정도면 충분하다.
카카오브레인의 시 쓰는 AI 모델 ‘시아’가 쓴 첫번째 시집 ‘시를 쓰는 이유’. /카카오브레인
시아의 첫 번째 시집에는 이렇게 쓴 시 53편이 실렸다. 시의 주제는 디지털 연산을 위한 기계어 ‘0’과 ‘1’을 활용해 1부는 공(0), 2부는 일(1)로 선정했다. 1부는 시아 제작에 참여한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의 작업 노트에 등장하는 표현들로 만들어진 시로 구성됐고, 2부는 수학과 과학에 관한 주제로 지은 시가 담겼다. 
AI가 쓴 시집이 국내에서 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에서는 2017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AI가 쓴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를 중국에서 출간한 사례가 있다.
AI가 시를 쓰고 시집까지 낸다는 건 그만큼 AI 기술이 고도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AI가 언어학습을 통해 사람과 유사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AI가 인간의 고유 영역인 창작과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시아가 쓴 시는 시집뿐 아니라 연극의 극본으로 만들어져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창작집단 리멘워커는 시아의 시집 ‘시를 쓰는 이유’에 수록된 시 20편을 토대로 한 AI 시극(詩劇) ‘파포스(PAPHOS)’를 8월 12~14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패션 디자인·그림·작곡까지 하는 AI
시뿐 아니라 이미 창작의 영역인 예술 분야에서 AI는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AI 패션 아티스트 틸다(Tilda)가 미국 ‘뉴욕 패션위크’에서 박윤희 디자이너와 함께 의상 200여벌을 선보이기도 했다. 틸다가 만든 3000여장의 이미지와 패턴을 기반으로 만든 의상들이다. 
박윤희 디자이너는 “새 디자인을 위해선 보통 패션쇼 몇 달 전부터 수십 명의 디자이너와 작업을 해야 하는데, 틸다와는 한 달 반 만에 준비가 끝났다”고 했다. 
‘금성의 꽃’이란 텍스트로부터 틸다가 창조한 이미지(왼쪽 위)가 인간 디자이너에 의해 패턴(왼쪽 아래)으로 변환되고 의상으로 제작되는(오른쪽) 과정. /LG AI연구원
틸다는 말뭉치 6000억개 이상, 텍스트와 결합된 고해상도 이미지 2억5000만장 이상의 데이터를 학습한 LG AI연구원의 초거대 AI ‘엑사원’을 기반으로 구현된 AI 패션 아티스트다.
미술계에서도 AI 활약이 두드러진다. 카카오브레인이 앞서 공개한 AI 아티스트 ‘칼로(Karlo)’는 특정 키워드와 화풍을 입력하면 맥락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생성해준다. AI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작품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칼로를 활용해 나만의 갤럭시 북을 꾸미는 ‘갤럭시 북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LG의 초거대 AI ‘엑사원(EXAONE)’, 미국 스타트업 오픈AI의 ‘달리2’(DALL-E2) 등도 주제를 던지면 맥락을 이해해 실제 사람이 그린 듯한 이미지를 내놓는다.
삼성전자는 카카오브레인 인공지능(AI) 모델 칼로(Karlo)를 활용해 갤럭시 북을 꾸미는 ‘갤럭시 북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MS는 렘브란트 미술관과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와 함께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AI를 만들었다. 넥스트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미술계를 이끌었던 화가 렘브란트의 화풍을 재현해, 그가 실제로 그린 것 같은 초상화를 만들어내는 AI다. 
연구팀은 300점 이상의 렘브란트 작품을 3D 스캔해 디지털 파일로 만들며 AI를 학습시켰습니다. 렘브란트가 초상화를 그릴 때, 물감으로 어떤 질감을 살려냈는지 그 두께와 붓의 방향까지 분석해 똑같이 그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넥스트 렘브란트는 렘브란트의 화풍을 쏙 빼닮은 그림을 그려냈다. 
개인전을 연 AI도 있다. 직접 연필과 붓,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AI 아티스트 로봇 ‘아이다(Ai-Da)’는 2021년에만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 다른 창작 영역인 작곡 분야도 마찬가지다.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크리에이티브마인드가 개발한 AI 작곡가 ‘이봄’은 클래식부터 전자음악, 힙합,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 이봄은 음표를 오선지에 무작위로 배치하고, 기존에 학습한 음악 지식을 통해 얼마나 자연스러운 곡인지 판단해 작곡을 마친다.
◇ AI 작품에 창작성·저작권 인정해야 할까?
그런데 AI가 만든 작품을 ‘창작물’로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AI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담긴 창작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과연 어디까지 AI 작품을 인정할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AI가 만든 창작물이 늘고 있지만 이를 창작물로 볼 것인지 또 저작권을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픽사베이
AI 작품의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측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 곳곳에 인간이 개입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유의 창의성에 따른 새로운 창조물이라기보다 인간이 제공한 정보의 조합일 뿐이라는 것. 또 AI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작가로서의 해석이나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AI의 창작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은 다르다. 현대 미술의 ‘사진’이라는 장르처럼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창의성도 결국 성장하면서 습득한 수많은 정보들을 조합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AI의 창작물 역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AI가 만든 창작물의 ‘저작권’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AI의 작품을 ‘작동한’ 사람의 저작물로 해야 할지, AI를 ‘학습 시킨’ 사람의 것으로 할지, 아니면 아예 AI를 만든 사람의 것으로 해야 할지 공방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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