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이 장애인 연기 잘하면 연기파 배우?…“외국에선 비판감”

입력 : 2022.07.09 06:00 | 수정 : 2022.07.14 16:58

    정은혜씨는 ‘한지민 언니’로 유명합니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배우 한지민의 쌍둥이 자매 역할로 출연하며 스타가 됐는데요, 정씨는 이 드라마에서 다운증후군 화가 영희 역을 맡았습니다. 6월 23일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도 개봉했습니다. 그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니얼굴 은혜씨’는 두 달만에 구독자 5만명을 훌쩍 넘겼습니다.
    우리나라 인구 중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5.1%입니다. 하지만 정은혜씨처럼 장애인 배우가 TV 드라마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주인공이 장애인인 드라마나 영화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을 연기했습니다. 배우 조승우 씨가 자폐성 장애인으로 나온 영화 ‘말아톤’이나, 배우 문소리 씨가 뇌성마비 장애를 연기한 '오아시스’가 대표적입니다. 배우 신현준이 주연을 맡은 ‘맨발의 기봉이’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때마다 장애인 배역은 비장애인 배우들이 맡았습니다. 또 장애인 역할은 비장애인 배우들이 실력파 연기자로 발돋움하는 발판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국내 최초 장애인 배우는 강민휘…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도 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배우 강민휘. /조선일보 유튜브 캡처
    장애인 배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 배우는 화면에서 비중이 큰 역할을 맡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브라운관에 처음 얼굴을 비친 장애인 배우는 누굴까요? 국내 최초 장애인 배우는 강민휘 씨입니다. 그는 생후 6개월에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총 12번의 미팅을 가진 후 2005년 문소리씨가 주연을 맡은 ‘사랑해 말순씨’란 영화로 배우 데뷔를 합니다. 다운증후군 소년 ‘재명’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후 그는 KBS ‘안녕하세요 하느님’, MBC 드라마넷 ‘피아노가 있는 풍경’ 등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습니다.
    뇌 손상으로 신체 기능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배우 길별은(52) 씨도 2022년 현재 18년차 베테랑 배우입니다. 그는 뇌병변 2급 장애를 가졌습니다. 2014년 tvN 드라마 ‘갑동이’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를 연기했습니다. 

    1990년 그는 연기자를 꿈꾸며 한국예술대에 입학했다가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퇴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교회에서 연극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장애인 객원 배우를 모집한 서울예술단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는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를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장애인들이 갖고 있는 개성이나 얼굴 표정, 몸짓을 장애인 배우만큼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그의 소속사는 ‘프로316’입니다. 이 회사는 한국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 이사인 김은경씨가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는 문화관광부 산하에 있는 사단법인입니다. 장애를 가진 연예인을 발굴하고 양성합니다. 그는 배우 김민휘씨와 합숙하며 연기를 가르쳐 연예계에 데뷔시키는 등 오랜 시간 장애인 연예인 육성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감독과 작가들이 장애인 배우는 연기를 잘 못할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들도 훈련을 많이 받는 프로다. 믿고 선택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장애인 역은 장애인이 맡아야”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 배우가 TV나 영화 배역을 맡는 경우가 드물지만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굵직한 배역을 맡을 뿐 아니라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서구권에서는 비장애인이 장애인 역을 맡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을 이른바 ‘크리핑 업’(cripping up·장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이라고 부릅니다. 아시아인나 흑인의 역할을 백인이 연기하는 것을 두고 ‘화이트워싱’이라고 비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트로이 코처. /판시네마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배우 윤여정이 3월 열린 제94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수어로 시상을 한 것이 화제가 됐는데요. 이 상을 받은 사람은 청각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입니다. 그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이 상을 모든 장애인들에게 바친다. 농인(聾人) 연기자들이 많은데, 그 분들께도 모두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는 영화 ‘코다’에서 청각장애인 아버지 역할로 상을 받았습니다. 션 헤이더 감독의 영화 '코다'는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장애가 없는 아이라는 뜻의 'Child of Deaf Adult'를 줄인 말입니다. 영화는 가족 모두가 청각장애가 있는 소녀 '루비'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루비의 청각 장애인 아버지 ‘프랭크’ 역을 맡은 코처는 진한 부성애를 보여줬습니다.

    코처는 장애를 가진 배우로는 세 번째로 오스카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1947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포탄을 맞아 두 팔을 잃은 배우 헤럴드 러셀이 오스카에서 최초로 수상한 장애인 배우입니다. 1987년 청각장애 배우로서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말리 매틀린이 오스카에서 두 번째로 연기상을 장애인 배우입니다.
    왜소증 배우 피터 딘클리지. /영화 ‘시라노’ 제공
    피터 딘클리지도 할리우드의 장애인 배우로 유명합니다. 그는 왜소증을 가져 신장이 132cm에 불과합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피터 티리온 라니스터’ 역을 맡으면서 대중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역할로 그는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딘클리지는 ‘왕좌의 게임 시즌8’까지 연속해서 출연했습니다. 시즌 당 250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26억7800만원의 출연료를 받 높은 몸값도 자랑했습니다. 그는 최근 뮤지컬 영화 시라노에 출연한 것까지 포함해 약 80편의 작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인식 변화와 더불어 예산지원 필요해

    전문가들은 장애인 배우 출연을 활성화하려면 인식뿐 아니라 예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컨대 청각장애 배우가 출연하게 되는 경우 수어통역사 같은 추가 인력을 배치해야 합니다. 제작사들이 이런 비용 지출에도 부담을 덜 수 있게 정부에서 제작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 김은경 이사는 “장애인 배우들의 출연료가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길별은 배우도 18년차 배우인데 신입급과 비슷한 출연료를 받는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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