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 죽여버린다”...욕하고 폭행해도 사장님이 멀쩡한 이유?

입력 : 2022.07.07 06:00 | 수정 : 2022.07.07 08:58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직장에선 여전히 관련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괴롭힘 끝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다수 발생했는데요. 괴롭힘을 당한 이들은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괴롭힘이 줄기는커녕 되레 보복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6월 10~16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직장갑질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29.6%나 됐습니다. 셋 중 한 명은 직장 갑질을 당했다는 것인데,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던 지난 3월(23.5%)보다 늘어난 수준입니다. 코로나19 앤데믹으로 재택근무가 해제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괴롭힘도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마 ‘회사 가기 싫어’에서 후배 직원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는 직장 상사의 모습. /KBS2
    괴롭힘 유형은 모욕·명예훼손(19.4%)이 가장 많았고, 부당지시(16.1%), 따돌림·차별(13.4%), 업무 외 강요(13.1%), 폭행·폭언(12.2%) 등이 있었습니다. 괴롭힘 행위자는 ‘임원이 아닌 상급자’(36.8%)가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고용주(24.7%)와 비슷한 직급의 동료(22.6%)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괴롭힘 경험자 중 39.5%는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답했는데요. 직장인 10명 중 1명(11.7%)은 심각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 11.5%는 자해를 비롯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욕하고 머리채 잡고, 스토킹도 
    최근 의학박사 방송인이자 건강기능식품 회사 대표 여에스더씨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직원들에게 외모를 지적하는 모습을 보여 갑질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지난 6월 12일 방송된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프로그램에서 직원들을 향해 “너희들은 두 턱이야”, “진짜 미안한데 너 지금 살찌고 있는 것 같거든”, “너희 얼굴 시뻘겋고 눈도 부었어” 등의 발언을 해 일부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은 것인데요. 
    이같은 논란에 여 대표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직원들을) 자식처럼 생각해 직설적으로 말하고 행동했는데, 방송을 통해 제 모습을 보니까 ‘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직원들에게 사과했다. 방송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건강기능식품회사 여에스더 대표가 직장 갑질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유튜브 채널 ‘여에스더의 에스더TV’.
    직장인들은 여 대표의 사례가 현실에선 ‘판타지’에 가깝다고 합니다. 여 대표처럼 당사자가 직접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죠. 직장인들의 실제 근로 환경은 어떨까요? 직장갑질119가 2022년 1월 공개한 직장 괴롭힘 사례를 보면 괴롭힘 형태는 스토킹부터 폭언, 2차 가해까지 다양합니다. 
    직장인 A씨는 부장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부장은 매일 본인 업무를 떠넘기는가하면 “야 XX놈아 똑바로 안 해?” 등의 언어폭력을 서슴없이 합니다. 또 술자리에서 두 손으로 멱살을 잡고 흔든 적도 있고, 머리채를 잡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직장인 B씨는 상사의 고백을 거절한 뒤로 회사에 다니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다른 직원과 대화를 나누면 그 직원을 불러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캐묻고, 누굴 만나는지 조사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집에 찾아오고, 강제로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등 성추행까지 했다고 합니다. 
    어렵사리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지만,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직장인 C씨는 괴롭힘을 신고한 후 직원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연봉이나 성과급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가해자들과) 같이 밥이라도 먹으라’는 말이 돌아왔고, 이후 업무에서도 배제됐습니다. 
    5인 미만은 ‘치외법권’이라고? 
    직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해치는 행위는 직장 괴롭힘에 해당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르면 1차 가해가 일어날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합니다. 2차 가해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직장 상사가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고 있다. /tvN
    하지만 이같은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2019년 7월부터 2021년 말까지 직장 괴롭힘 사건 1만4327건 중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179건으로 1.25%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이 법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실제로 직장인 D씨는 회사 사장에게 욕설과 협박을 받아 노동청에 신고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취하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D씨는 “사장이 ‘XX 죽여버린다’며 수시로 욕을 하고, 갑자기 다가와 손을 들고 때릴 것처럼 위협하기도 했다”며 “결국 노동청에 이런 사실을 신고하면서 녹음과 카톡 내용을 증거로 보냈지만, 회사가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직장 내 괴롭힘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2013~2021년 산업재해를 신청한 정신질환 사망자 158명 중 88명(55.7%)이 산재를 인정받았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업무 스트레스로 숨졌다는 것을 인정받은 셈입니다. 여기에 군인이나 교사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직업군을 고려하면 관련된 사망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직장 안에서 이뤄지는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으로,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나 관계 등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시키는 등 집단 따돌림이나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 회식 강요 등도 괴롭힘에 해당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누구나 그 사실을 신고할 수 있다. 신고가 이뤄지거나 관련 사실을 인지하면 회사는 지체 없이 객관적 조사와 피해 근로자 보호(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가해 근로자 징계, 비밀유지와 같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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