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패션’ 신경 쓰이네”…구찌?고야드의 고민

브랜드 가치 유지 위해 소비자와 거리 두는 명품 브랜드
버버리, 이미지 제고 위해 생산 중단까지
“가격 상승 원인 중 하나기도…”

30대 남성 직장인 김모(32)씨는 최근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가죽 잡화를 사려다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김씨는 “클러치나 지갑을 사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구찌(Gucci)나 고야드(Goyard) 등을 들고 다니는 어린 친구들을 많이 봐서 망설여졌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명품을 흔히 일진이라고 하는 아이들이 ‘교복’처럼 입거나 들고 다녀서 결국 다른 브랜드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찌는 1921년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설립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입니다. 루이비통, 샤넬 등과 함께 럭셔리 브랜드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고야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야드는 1853년 프랑수아 고야드(Fran?ois Goyard)가 창립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죠.

구찌와 고야드 모두 1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명품 브랜드로 다른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전통과 퀄리티, 디자인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김씨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국내에서 이들 브랜드 인지도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10대와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많이 찾는 브랜드가 됐죠.
온라인에서 떠도는 ‘일진 패션’ 밈.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1020 명품 소비 늘며 ‘일진 패션’ 별명 붙기도

10대와 20대 명품 소비 증가 현상은 2020년부터 두드러졌습니다. 당시 ‘플렉스(Flex)’ 문화가 10대 사이에서 퍼졌습니다. 플렉스는 자신이 잘났음을 보여주거나 재산이 많은 것을 과시할 때 쓰는 상징적인 단어입니다. 10대 플렉스 문화에서 대표적인 것이 명품이었습니다. 일상복을 명품 아이템으로 치장하는 것이었죠.

2020년 스마트학생복이 중·고등학생 10대 358명을 대상으로 ‘명품 소비 실태’를 조사했는데요, 그 결과 56.4%가 ‘명품을 구매한 적 있다’고 답했습니다. 절반 이상이 명품 구매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백화점과 온라인 명품 플랫폼 업계 역시 전통 명품부터 신흥 럭셔리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MZ세대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죠. 온라인 명품 플랫폼 머스트잇이 2021년 발표한 2020년 구매 데이터를 보면 전체 구매 건수 증가율은 20대 63%, 30대 48%였고, 10대 증가율이 67%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들이 가장 많이 구매한 브랜드는 ‘스톤아일랜드’, ‘구찌’, ‘메종마르지엘라’, ‘톰브라운’, ‘발렌시아가’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소위 ‘일진(무리를 지어다니며 사회적·신체적인 위력을 과시하는 비행 청소년들을 칭하는 말) 패션’으로 알려진 브랜드와 어느 정도 일치합니다. 일진 패션은 무리 지어 다니는 청소년들 혹은 나이 어린 사회 초년생들이 비슷한 복장을 마치 교복처럼 자주 입어서 붙은 별명입니다.

대표적으로 톰브라운 가디건과 바지, 골든구스 신발, 구찌 스네이크 클러치, 크롬하츠 모자, 무스너클 패딩, 스톤아일랜드 맨투맨, 겐조, 발렌티노 스니커즈 등이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이 제품들은 만화 캐릭터에 입힌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이 돌기도 합니다.
SNS에서 마치 짠듯 비슷한 옷을 입는 사람을 희화한 글. /트위터 캡처
◇“브랜드 가치 나락으로…” 버버리는 생산 중단까지

명품이 젊은 층에게 소비되는 것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 따라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고, 경제력이 어른보다 부족한 학생들도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브랜드라면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톰브라운, 구찌, 무스너클, 스톤아일랜드 등을 떠올리면 그 브랜드가 아닌, 해당 브랜드를 소비하는 ‘일진’ 무리가 먼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직장인 박모(35)씨 역시 특정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가 예전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박씨는 “품행이 바르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많이 소비하는 브랜드는 꺼려진다”며 “아무리 비싸고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아도 국내에서 너무 양아치스러운 이미지로 굳어졌기 때문에 굳이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값비싼 제품을 소비하는 건 언제까지나 그들의 자유”라면서도 “그러나 어린 학생들이 오직 유행에 뒤쳐지지 않으려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들의 경제 상황과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건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과거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Burberry)가 브랜드 이미지 실추로 고생했던 적이있습니다. 버버리는 차브(chav)족 이 즐겨 찾는 브랜드였는데요, 이 때문에 해당 제품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차브족은 영국에서 고급 브랜드나 상류문화를 저질스럽게 즐기는 하층민 출신 비행청소년 집단을 말합니다. 영국판 동네 양아치인 셈입니다. 1980년대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일탈성향을 가진 10대와 20대 초반으로 구성돼 있고, 반항적인 정서나 불량스러운 정서가 패션과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차브족이 고수하는 패션을 ‘차브스타일’이라 일컬었습니다.

차브스타일 특징은 커다란 브랜드 로고가 들어간 셔츠, 버버리 야구 모자, 큰 디자인의 펜던트, 링 귀걸이, 트레이닝 팬츠입니다. 버버리를 포함한 명품업계에서는 이들 패션을 증오 수준으로 싫어했습니다. 불량한 품행으로 명품의 위상을 하락시켰고 정품이 아닌 가품을 구매해 매출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죠.

결국 버버리는 자사 트레이드 마크인 체크무늬가 들어간 야구모자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또 다른 명품 브랜드 프라다에서는 차브족이 즐겨 신는 검은색 운동화의 영국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버버리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제품의 생산까지 포기하면서 이미지를 지키려고 노력한 것이죠.
과거 영국의 차브족이 입던 스타일.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명품 이미지 고수 위해 소비자와 ‘거리두기’

이처럼 명품 브랜드는 ‘고급’, ‘명품’ 등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소비자와 조금씩 거리를 둡니다. 소비자와 너무 가까우면 이미지 소비가 심해지고, 결국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격 상승도 거리두기 전략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가 거리를 두는 가장 기본적이고 쉬운 방법이 가격”이라며 “높은 가격으로 ‘아무나 쉽게 구매할 수 없는 브랜드’라는 걸 인식시키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명품 브랜드가 터무니없이 가격을 책정하는 건 아니다”며 “퀄리티에 상응하는 가격이니 소비자들도 계속해서 구매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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