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조’라 불러줘”…회장님 호칭이 달라졌다

‘토니, JH, 샘킴, 엉클조….’
이게 다 무슨 말이냐구요? 재계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 총괄대표, 조용병 신한금융 지주 회장의 닉네임인데요. 사내 임직원들과 격의없이 소통하기 위해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최근 대기업에서 회장님이나 대표라는 직함 대신 영어이름과 닉네임으로 부르는 등 호칭을 바꾸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권위적인 느낌의 기존 호칭보다 친숙한 이름을 통해 자유롭고 혁신적인 조직으로 변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SK그룹
호칭과 직책을 단순화하는 작업은 수년전부터 IT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과거 카카오의 김범수 전 의장이 ‘브라이언’으로 불렸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제 이 호칭 문화가 대기업에서도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회장님만 호칭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내부에서도 서로를 ‘님’이나 ‘프로’라고 부르는 등 직급을 없애는 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LG경영연구원은 2022년부터 전 직원을 ‘님’으로 통일해 부르고, 포스코ICT와 LIG넥스원은 ‘프로’로 통일했습니다. 직급과 연공서열을 없애고 민첩한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습니다. 
그런데 잠깐, 연공서열을 없앤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고참 순으로 승진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과를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겠다는 것이죠. 이대로라면 30대 임원과 40대 최고경영자도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호칭을 바꾸고, 직급을 없애는 작업은 기업 문화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첫 단추인 셈입니다.
롯데쇼핑의 통합 온라인몰인 롯데온을 운영하는 이커머스 사업부도 2022년부터 직급제를 폐지하고, 직원끼리 ‘님’을 붙여 소통하고 있습니다. 또 직급 대신 8단계의 커리어 레벨제를 뒀는데요. 이 레벨은 본인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관련해 현대차도 지난 2019년 직급을 기존 6단계에서 매니저와 책임매니저로 크게 줄이고, 이사?상무 등은 상무로 통일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직급단계를 기존 7단계에서 4단계로 줄이면서 직원간 호칭을 ‘프로’나 ‘님’으로 통일했습니다. 2022년부터는 회사 차원에서 상호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고, 사내 인트라넷에 직원 직급과 사번을 없앴습니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의 ‘끝판왕’인 공기업도 호칭 바꾸기에 돌입했습니다. 제주관광공사는 2022년 3월부터 직원끼리 매니저로 통일해 부르고 있는데요. 직책자인 실장, 그룹장, 팀장 등에 대해선 기존 호칭을 유지하지만, 부서원은 매니저로 호칭을 통일했습니다. 
그간 공사는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을 변형한 형태의 호칭을 사용해왔지만, 호칭 변화를 통해 과거 관행을 벗어나 조직 혁신을 꾀하는 것이죠. 인사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구성원 간 협업을 통해 성과 중심 조직으로 거듭난다는 방침입니다. 
한편 CJ는 2000년에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님’ 호칭을 도입했습니다. 2022년에는 한 발 더 나아가 CJ E&M에 직급을 완전히 폐지했는데요. 가령 ‘전략기획 홍길동님’, ‘예능제작PD 박아무개님’이라고 부르는 등 호칭을 수행 직무와 역할로만 구분합니다. 또 체류 연한이나 연차 개념이 없어 역량에 따라 10년 안에 임원에 오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MZ세대 직원들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다. /삼성?SK제공
기업들은 임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CEO가 직접 직원들을 대면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회사의 주축이 된 MZ세대의 아이디어가 발현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유능한 인재의 유출을 막겠다는 전략도 깔려있습니다. 
관련해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2022년 5월 3일 임직원들과 조직문화와 혁신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리인벤트데이(REINVENT Day)'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우리 회사는 엉덩이가 큰 공룡처럼 앉아있다”, “일주일 내내 회의용 보고장표만 만든 적도 있다” 등 직원들의 다양한 쓴소리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도 코멘토링(Co-memtoring)을 통해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후드티를 입고 나타난 신 부회장은 1990년대생 사원과 선임 멘토로부터 MZ세대의 문화를 배우고, 소통하는 팁 등을 조언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매주 목요일 경영진과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썰톡'(Thursday Talk)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 사장은 이곳에서 자신의 취미생활을 언급하며 “내년 여름 해수욕장에서 만나게 되면 밥을 사겠다”고 말하는 등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삼성전자도 ‘위톡’을 통해 임직원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기업도 MZ세대에 맞춰 조직문화를 쇄신하고 있는데요. 한국수자원공사는 5년차 이하 젊은 직원이 참여하는 사내 이사회를 운영해 업무수행 방식과 주요 사업에 의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너지공단도 대리급 이하 직원들로 구성된 ‘KEA 브릿지’를 만들어 경영진에 MZ세대 의견을 직접 전달하는 창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호칭과 직급을 없애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호칭과 직급을 없애는 등 기업의 파격적인 시도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업무 분담이 확실하고, 성과가 눈에 보이는 개발조직 등에서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강점일 수 있지만, 영업조직은 외부 미팅 때 높은 직급이 유리해 기존 직급제 호칭을 그대로 쓸 수 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백오피스에서는 호칭 변경에 따른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오히려 승진 기회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호칭 일원화에 따라 직급도 단순화되어 승진과 연봉 상승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호칭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해 본래의 호칭으로 돌아간 사례도 있습니다.
한화는 2012년부터 매니저 등으로 서로를 불렀지만, 2015년 3월부터 종전 호칭으로 돌아갔습니다. 업무 일선에 혼선이 발생하고, 승진이 사라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죠. 하지만 최근 한화를 비롯해 예전 체계로 돌아간 기업들도 ‘매니저’ 또는 ‘프로님’으로 통일하는 등 수평적인 기업문화 구축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호칭의 차이가 변화의 시작인 것을 인지한 데 따른 결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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