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국인은 무슨 연구를 했길래 IG 노벨상을 받았을까
노벨상 패러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재밌거나 황당한 연구·행동 선정해 시상
실제로는 인류에 도움 되는 연구도 많아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한지원씨가 연구 논문 성과를 인정받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을 받았다. 논문 주제는 ‘약한 진동이 올 때 커피가 쏟아지는 현상에 관한 연구(A Study on the Coffee Spilling Phenomena in the Low Impulse Regime)’였다.
저명한 상을 탄 연구 치고 주제가 해괴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는데, 사실 그 생각이 맞다. 한씨가 받은 상은 ‘흉내 낼 수 없거나 흉내 내면 안 되는’(that cannot, or should not, be reproduced) 업적을 기리는,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인가
이름에서부터 대놓고 티를 내듯,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한 상이다. ‘이그’는 ‘Ignoble(상스러운)’에서 따왔다. 주최자는 미국 유머 과학 잡지 ‘황당무계 리서치 연보(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다. 1991년 이 상을 만든 이래, 27년간 운영을 도맡아 온 단체다.
한국에선 이상하게도 하버드 대학교 학내 잡지로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특정 대학과 관계가 없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유럽 지국이 있는 국제 잡지며, 에디터들도 영국, 스코틀랜드, 덴마크, 폴란드, 브라질, 스위스 등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근무한다. 다만 하버드대 학내 단체인 ‘하버드-래드클리프 SF 연구회’와 ‘하버드-래드클리프 물리학과 학생회’가 이 상을 후원하기는 한다.
시상 분야는 기본적으로 노벨상(평화·문학·물리·화학·생리의학·경제)에 준한다. 하지만 노벨상과는 달리 괴상한 연구나 활동부터 먼저 골라둔 다음 시상 분야를 끼워 맞추는 방식이라, 앞서 언급한 6개 분야에만 상을 주는 때가 드물다.
실제로 글 머리에 언급된 한씨는 노벨상엔 없는 ‘유체역학상’ 부문 수상자다. 역대 시상팀이 한씨를 포함해 달랑 셋뿐인, 나름대로 희소성 있는 분야다. 참고로 그 중 하나는 펭귄이 둥지 밖으로 똥 싸는 모습을 관찰한 독일·헝가리·핀란드 공동연구팀이었다. 똥을 발사할 때 항문 압력은 약 0.1~0.6기압까지 올라가며, 배설물이 날아간 거리는 평균 40cm였다 한다.
◇이 상을 받으려면
이그 노벨상을 받는 연구는, 처음 들었을 땐 우습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인류 지성에 시사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물론 세상엔 제작 의도는 멀쩡히 적어두고 실제 내용은 막장인 드라마가 부지기수듯, 이그 노벨상 시상 이념 또한 항상 곧이곧대로 지켜지는 건 아니다. 2005년 경제학상 수상작인 ‘도망가는 알람시계’나, 쥐가 가끔 일본어를 거꾸로 말하는 것과 독일어를 거꾸로 말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함을 증명한 2007년 언어학상 연구 등이 그런 예다. 그러니 실제로는 사회적 의의를 떠나 기괴하거나 재밌는 연구는 웬만하면 상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여겨도 무방하다.
하지만 상 받은 연구 대부분은 정말로 사회에 보탬 될 여지가 많다. 가령 한씨의 출렁이는 커피 연구만 해도 그렇다. 처음 들었을 땐 별 희한한 걸로 논문을 썼네 싶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제법 쓸데가 있다. 선박이나 비행기는 운행 중 물이나 공기 영향을 받아 꾸준히 진동한다. 자연히 연료통에 담긴 액체 연료가 컵에 담긴 커피처럼 출렁이고, 이 때문에 선체나 비행기 동체 무게중심까지 요동친다. 이는 자칫하면 대형 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약한 진동이 올 때 액체가 어떻게 출렁일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대비 시스템을 마련해 위험을 대폭 줄일 가망이 있다.
◇수상에 빛나는 한국인
역대 한국인 수상자는 한씨를 포함해 넷이다. 1999년 향기나는 양복을 개발해 환경보호상을 받은 FnC 코오롱 소속 권혁호씨가 최초 수상자였고, 이듬해엔 고(故)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37년간 대규모 합동결혼식을 주최한 공로로 경제학상을 받았다. 참고로 이그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엔 그가 결혼시킨 부부 쌍이 1960년 36쌍부터 시작해 1997년 3600만쌍에 이르렀다 적어 뒀지만, ‘그(문선명)의 보고에 따르면(according to his reports)’이라 단서를 달아 두고 있다.
주최 측은 노벨상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친척인 이그나시우스 노벨(Ignatius Nobel)의 유산으로 이 상을 창립했다 말한다. 물론 노벨가 일족 중 저런 인물은 없었다. 당연히 유산도 있을 리 없다. 달리 말하자면, 상을 받았다 한들 상금은 기대할 수 없다는 거다. 애초에 이 상 수상자들은 시상식 참가비도 본인 돈으로 내야 한다.
그래도 야박하게 아주 빈손으로 보내진 않는데, 상이라고 주는 게 진짜 상이 맞는 건지 좀 애매하다. 예를 들어 2003년 상품은 황금 벽돌이었는데, 그 크기가 1나노미터(nm)였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다. 참고로 어른 머리카락 굵기가 약 10만 나노미터다. 지난 2013년엔 10조 달러 상금이 지급됐는데, 달러는 달러지만 짐바브웨 달러였다. 초(超)인플레이션으로 휴지값이 지폐보다 비싸진 그 나라다. 따라서 10조 짐바브웨 달러는 미국 돈으로는 4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4000원이다.
◇스위티 푸의 전설
둘째는 의학상 수상소감 발표 때였다. 그 해 의학상은 성교 중 여성이 흥분상태에 있을 때 남녀 성기의 MRI 영상을 분석한 여성 네덜란드 인류학자가 받았다. 그는 자료 수집을 위해 논문 공동 저자인 남성과 함께 MRI 기계 안에서 직접 성관계를 하면서 영상을 찍었다 한다. 이 연구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는 동안 스위티 푸가 단상에 올라왔지만, 진지하게 발표를 경청 중이던 주최 측 제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그 노벨상 ? 간단 요약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은 노벨상 패러디로, 매년 전 세계인들이 벌인 재밌거나 황당한 연구·행동 중 일부를 골라내 상을 주고 있다. 1991년 미국 유머 과학 잡지 ‘황당무계 리서치 연보(AIR)’가 만들어 27년째 시상 중이다. 올해엔 한인 유학생 한지원씨가 유체역학상을 받아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