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맛'만 잘봐도 연 1조원 시장 주인공 될 수 있다는데...

  • 글 jobsN 박가영

국내 1호 워터 소믈리에
2020년 생수 시장 1조원 예상

‘워터 소믈리에(Water Sommelier)’는 물 전문가이다. 물의 종류와 특성을 공부해서 사람들에게 최적의 물을 추천하고 서비스한다. 최근 유럽의 미쉐린 가이드 ‘Three Star’ 레스토랑들은 워터 소믈리에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최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워터 소믈리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자신에게 꼭 맞는 물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1호 워터 소믈리에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바로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이제훈(47) 지배인이다. 1995년 입사한 그는 와인 소믈리에 자격을 먼저 땄다. 워터 소믈리에 자격증을 딴 계기는 '실수'였다. 외국인 고객이 가져온 탄산수를 스파클링 와인으로 착각해 망신을 당한 경험이 그를 워터 소믈리에란 새 직종에 도전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지배인은 2020년 국내 생수 시장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 시장이 커지는 만큼 ‘워터 소믈리에’에 대한 수요도 늘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국내 1호 워터 소믈리에 이제훈 지배인을 만나 일반 소비자가 알지 못했던 ‘물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1호 워터 소믈리에인 워커힐 호텔 이제훈 지배인./jobsN

◇ “워터 교육 기관 부족해 아쉬워”
 
-‘워터 소믈리에’라는 생소한 분야에 발 디딘 이유는 뭔가

“1999년 ‘와인 소믈리에’로 일할 때였다. 어느 날 주한 독일대사 부부가 투명한 액체가 담긴 병을 가져오셨다.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도록 와인 잔 등을 세팅해 드렸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도 두 부부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시더라. 다른 테이블 고객들이 다 나가고 난 뒤 제게 조용히 이야기하셨다. 알고 보니 투명한 액체는 스파클링 와인이 아니라 ‘이탈리아 물’이었던 거다. 정말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와인뿐만 아니라 물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 했다.”
 
-워터 소믈리에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외국은 1990년대에 워터 소믈리에가 처음 생겨났고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에 제가 국내 1호 워터 소믈리에가 됐다. 2011년 사단법인 한국 국제소믈리에 협회 산하에 한국 워터 소믈리에 협회가 생겼다. 그해부터 자격 인증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가르치는 학원도 없었고 관련 서적 번역본도 없었다. 유일하게 한국수자원공사에서 1년에 한 번 K-Water 소믈리에 교육 과정을 실시했다. 저 역시 그 과정을 거쳐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 밤마다 영어 공부까지 병행하면서 외국 서적을 가지고 물에 대한 지식을 채워나갔다. 지금까지도 국내 워터 교육 기관이 턱없이 부족한 게 아쉽다. 
 
한국수자원공사 교육 과정과 더불어 2013년부터는 경희대학원 소믈리에 마스터 과정이 생겼다. 민간 워터 소믈리에 자격제도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이다. 1·2학기로 나눠서 1년 동안 가르친다. 하지만 소믈리에 마스터 과정이기 때문에 와인과 전통주, 다른 과목을 함께 가르친다. 1년간 워터만 집중적으로 공부한다고 볼 수는 없다.
 
두 기관 중 어디서든 관련 교육 수료를 마치면 워터 소믈리에 자격을 인정받는다. 현재 국내에는 100여명이 워터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다.”

이제훈 지배인은 2011년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진행한 K-water 워터 소믈리에 교육 과정을 통해 자격을 인증받았다./이제훈 지배인 제공

-실질적으로 워터 소믈리에로 활동하기 위해서 국가대표 선발 대회를 거쳐야 한다던데
 
“그렇다. 경희대학원 소믈리에 마스터 과정과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론’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물의 역사나 종류 등을 공부하는 거다. 잡지나 신문사 기고를 하시려는 분들은 해당 자격만 가지고도 충분히 워터 소믈리에로서 일하실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물에 대한 ‘자문’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서는 ‘실무’ 능력을 겸비한 워터 소믈리에를 더 선호하시더라. 실무 능력 평가는 매년 1회씩 열리는 ‘한국 국가대표 워터 소믈리에 경기대회’를 통해 인정받을 수 있다.

대회 한 번 치러질 때마다 30~50명 정도가 지원한다. 지원하는 분들의 이력도 다양하다. 대학교수부터 일반 직장인, 이미 호텔에서 소믈리에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수십명의 지원자 중에서 1·2·3등에 든 사람에게 소믈리에 마스터 자격증을 수여한다. 국가대표 자격도 주어진다. 2등이나 3등에 오르고도 꼭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에 3~4수를 하는 분도 많다. 
 
아직까지 세계 워터 소믈리에 대회가 생기지 않았다. 국가대표를 뽑는 워터 소믈리에 대회를 하는 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워터 소믈리에 대회를 주최하기 위해 각국 워터 소믈리에 협회와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해당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겐 대기업에서 자문이나 강연 의뢰가 들어온다. 요즘은 다양한 분야에서 워터에 관련한 자문을 요청한다. 기본적으로 화장품, 특히 얼굴에 바르는 수분 크림이나 미스트 제품을 생산할 때 ‘좋은 물’을 사용하려는 회사가 늘면서 자문 요청이 많다. 냉장고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 생산 업체에서도 연락이 온다. 지난해에는 국내의 한 유명 전자회사에서 ‘탄산수’를 가지고 세탁기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구체적인 금액을 밝힐 수는 없지만 워터 강연이나 자문을 하면 건당 수백만원의 자문료를 받는다.”
 
◇ 사람과 상황에 따라 최적의 물을 추천하는 ‘워터 소믈리에’

2014년 1월 SK 사보에 소개 된 이제훈씨 / SK 제공
-국가대표 선발 대회에서 ‘블라인드 테스트’ 종목이 있던데
 
“국가대표 선발 대회는 총 3단계에 거쳐 1·2·3등을 가리는데, 2차와 3차 단계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다. 총 10개 종류의 물을 잔에 따라 놓고 어느 회사의 어떤 무슨 물인지를 맞춘다. 10개 중 4개 이상만 맞춰도 대회 우승은 따 놓은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블라인드 테스트는 어려운 종목이다. 경희대학원 소믈리에 마스터 과정 중에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대비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저는 물을 쉽게 육지 물과 해양 심층수, 탄산수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톡 쏘는 맛 때문에 당연히 탄산수 구별이 가장 쉽다. 하지만 탄산수 군집 내에서 각각의 물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탄산수는 암반을 뚫고 나온 물이다. 따라서 어떤 암반을 뚫고 나왔는지에 따라서 냄새가 약간씩 차이가 있다. 화산에서 터져 나온 탄산수 물들은 화산재 냄새를 함유하고 있다. 모레나 점토 자갈 등을 직접 혀로 핥아보고 냄새를 잘 기억해두는 게 탄산수를 구별할 수 있는 팁이다.
 
해양 심층수의 경우 육지 물보다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있다. 해양 심층수는 육지 물보다 분자 구조가 훨씬 촘촘하기 때문이다.
    
맛이나 향으로만 워터를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각적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물 잔을 흔들어서 물이 잔의 벽면을 타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흘러내리는지에 따라서도 물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미네랄 함유량이 많을수록 물의 점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천천히 벽면을 타고 흐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물 잔을 45도 정도 기울여서 잔 뒤편에 흰색 종이나 천을 댄 뒤 물 표면 경계선을 따라 비치는 색깔을 가지고도 물 종류를 구분한다. 무색 상태에서 반짝임이 강할수록 산성이 강한 것이고 노란 빛이 선명할수록 알칼리성이 강한 것이다. 이런 총체적인 정보를 종합해서 각각의 물의 특성과 맞춰본 뒤 어느 회사의 어떤 물인지를 점치는 것이다.
 
블라인드 테스팅을 훈련시켜주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사비를 들여서 물을 많이 마셔보는 수밖에 없다. 요즘은 와인이든 워터든 박람회가 많이 열리는데 그곳에서 테스팅을 하면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라. 그 방법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한 잔씩 따로 마시는 것과 섞어서 번갈아 가며 마시는 훈련은 현격히 차이가 있다.
 
물을 사다가 한자리에서 마셔보는 훈련을 하되 육지 물, 해양 심층수, 탄산수 이렇게 세 가지 군집으로 나누어 마셔봐야 한다. 이후 어느 정도 물 맛이나 물 냄새 구분을 할 수 있게 되면 각각의 군집을 섞어서 마셔보는 훈련을 해야 ‘블라인드 테스트’를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이제훈 지배인은 한국 국가대표 워터 소믈리에 경기대회에서 사회와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2017 제7회 국가대표 워터 소믈리에 경기대회 진행 영상 캡처

-그럼 고객들에게 어떤 물을 권하나
 
“앞서 ‘블라인드 테스트’에 관한 말씀을 드렸지만 그건 국가대표 워터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고객들을 모셔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일단 워터 소믈리에 자격을 갖춘 후 가장 중요한 건 ‘고객들에게 최적의 물을 얼마나 잘 제안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1차적으로는 고객의 성별과 연령에 따라서 워터 제안을 한다.
 
장년층에게는 ‘빙하수’를 추천한다. 빙하수는 육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혈액의 구조와 같아서 물을 마셨을 때 흡수율이 가장 빠르다. ‘해양 심층수’는 여성들 특히 임산부들께 추천한다. 양수에 포함된 성분은 대략 10가지인데, 해양 심층수가 양수와 가장 가까운 성분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40~50대 남성분들 중에서 특히 스트레스가 많고 술자리가 잦은 분들께는 칼슘과 미네랄 함량이 2:1인 물을 추천해 드린다. 동맥경화 예방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칼슘과 마그네슘 구성 비율이 2:1로  똑떨어지는 물은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나오는 물 밖에 없다. 그곳은 수원지 보호를 위해 물을 상품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되도록 칼슘과 마그네슘 함량 비율이 2:1에 가까운 물을 선택하시는 게 좋겠다. 생수를 사셨을 때 용기 뒷면에 적혀 있는 성분 표기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2차 제안 방법은 주문하신 음식 종류에 따라 워터를 추천하는 것이다.
 
생선 요리를 먹는 손님에게는 부드러운 생선의 식감을 고려해 무게감이 느껴지는 물을 추천한다. 미네랄 성분이 많이 들어간 물을 말한다.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물일수록 입안에서 밀도 있고 무게감이 깊은 맛을 낸다. 스테이크를 주문한 분께는 탄산수를 추천한다. 일반 물은 스테이크의 기름진 맛과 텁텁함을 씻어내지 못하지만 탄산수는 식후 개운함을 가져온다.”
 
◇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는 아직은 낯선 물의 세계
 
-여러 종류의 물을 마신다는 건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선 문화인 것 같다
 
“다양한 물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워터 카페가 2007년에 처음 등장했다. 서울 삼성동에 ‘노트랜스 워터 카페’가 생겼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일본처럼 워터 소믈리에 교육을 받은 사람이 서비스하지 않고 와인을 공부한 소믈리에들이 서비스를 했다. 결국 실패했고, 현재 폐업 상태다. 
 
2009년 9월 롯데 백화점 본점에 워터 바가 생겼다. 2014년 6월과 10월에도 각각 인천점과 수원점에 워터바 체인점을 냈다. 신세계 백화점에서도 2009년부터 강남점에 워터 바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다양한 물 종류를 선택해서 맛볼 수 있는 유통 채널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생수 시장이 비전이 있다고 보나
 
“당연하다. 국내 한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국내 생수 시장 연평균 성장률이 11%에 달한다. 2016년의 경우 전체 매출이 7400억원으로 전년대비 15.5% 성장했다.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2020년에는 1조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국내 음료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품목이 먹는 샘물이었다. 10년 넘게 1위였던 우유(두유 포함)를 제친 것이다. 생수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만큼 워터 소믈리에 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라고 본다.”
 
-워터 소믈리에로서 끊임없이 노력하시던데
 
“물에 대한 열정,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지금은 국가대표 워터 소믈리에 대회 심사에 집중하고 있다. 대회 기간 동안 선수들을 위한 모범답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심사위원들도 혀 감각을 잘 유지해야 한다.

워터 소믈리에 준비를 시작하면서 담배도 끊고 커피와 우유도 멀리했다. 커피는 아무리 양치를 해도 그 냄새가 이틀은 간다고 하더라. 지방이 많이 함유된 음식은 입안을 텁텁하게 만들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했다.

생선회를 먹을 때에도 간장이나 초고추장은 먹지 않는다. 찌개류와 비빔밥도 피했다.  ‘도대체 뭘 먹고 사냐’고 묻는 분들이 많더라. 아침에는 바게트 빵을 올리브유에 찍어 먹는다. 점심은 샌드위치로 가볍게 때우고 저녁에는 쌀을 먹고 싶어서 볶음밥을 먹는다. 미각이 둔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담백한 음식을 주로 섭취한다.
 
15년 넘는 기간을 이렇게 먹으니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쉽지 않았다. 원래는 술을 엄청 좋아했다. 몸무게 89kg에 허리가 37인치였을 때도 있다. 지금은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자기 관리를 통해서 건강의 변화를 직접 느끼고 워터 소믈리에로서의 전문성도 갖출 수 있어서 더없이 값진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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